고추
우리민족 에너지의 원천
학명 : Capsicum annuum
붉은 후추(red pepper), 고초(苦椒), 한국 음식을 대표하는 양념, 방한제, 벽사, 캡사이신, 그레고리 펙, 소음인, 진통효과, 엔돌핀, 스트레스 해소, 위장 보호, 식욕 증진, 항암, 항산화작용, 비만 예방, 갈색 지방세포, 피로 회복, 감기 예방, 피부 건강 유지, 비타민A, 비타민C, 멸치, 우유 |
1. 고추에 얽힌 일화
고추는 남아메리카 일대가 원산지인 가지과의 열대식물이다. 1493년 크리스토퍼 콜롬버스에 의해 스페인으로 전해졌는데 후추와 향이 비슷하고 색이 붉어 ‘붉은 후추(red pepper)’라 불렸다. 유럽에 먼저 전파되고 16세기에 일본, 17세기에 중국으로 전해지면서 우리나라에는 400여년전 임진왜란을 겪는 과정에서 고추가 들어오게 되었다. 당시 처음 고추를 접했을 때 왜겨자(倭芥子), 왜초(倭椒), 남만초(南蠻椒)라 불렀으며 맵고 알싸한 맛 때문에 ‘고초(苦椒)’라고 부르던 이름이 ‘고추’로 바뀌어 자리잡게 되었다.
고추는 땅을 가리지 않고 잘 자라며 수확성이 좋은 덕택에 전 세계로 퍼지는데 100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우리나라에서 고추가 다양한 음식에 이용된 것은 불과 200년 전 부터이나 현재 고추소비량은 1년에 약 20만톤에 육박하면서 한국 음식을 대표하는 양념으로 자리잡았다.
고추는 우리 생활 곳곳에 자리잡고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기력이 떨어지고 힘이 없을 때, 고추의 매운 맛을 통해 활력을 얻어왔다. 고추의 매운맛은 열을 발생시키고 개운함을 느끼게 하며 매운맛이 뇌에 전달되면 엔돌핀이 분비되어 우울함과 고통을 완화하고 감정을 조화롭게 조절해준다.
고추는 과거에 방한제로도 쓰였다. 겨울에 외출할 때 복대와 버선의 겹 사이에 고추를 넣어두어 해당 부위에 혈액순환이 활발히 이루어져 동상을 예방할 수 있었다.
또한 고추에는 벽사(辟邪, 나쁜 기운을 쫓는 것)의 의미가 있다. 옛날에는 아들을 낳으면 붉은 고추를 새끼줄에 꿰어서 대문에 걸어두었는데, 이는 고추의 붉은 빛으로 나쁜 기운을 쫓아내기 위함이었다.
재밌는 일화로 옛날에는 시집가는 딸에게 친정어머니가 고추씨가 들어간 주머니를 만들어주었다고 한다. 이는 시댁에서 슬픈 일이 생겼을 때 고추주머니를 손등에 문질러 눈물을 나게 하는 용도였다니 우리 선조들의 재치있는 지혜를 엿볼 수 있다.
고추의 매운맛은 캡사이신 성분 때문인데 포유동물 중에서는 사람만이 이 맛을 견뎌낸다고 한다. 사람을 제외한 포유동물은 캡사이신 성분이 뉴런에 강한 자극을 주어 심한 고통을 느끼도록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특성을 이용해서 농작물에 해를 끼치는 동물의 농지 접근을 차단하기 위한 용도로 고추를 사용하기도 한다.
세기의 명작 영화인 <로마의 휴일>의 주인공 그레고리 펙은 87세까지 왕성한 활동으로 수많은 걸작을 남긴 배우이다. 그는 고추를 아주 좋아해서 집 앞 정원에서 고추를 직접 재배하였고 평소 외식을 할 때도 고추를 지니고 다녔다고 전해진다.
2. 한의학에서 보는 고추
한의학에서는 고추의 성질이 뜨겁고 맛은 매우며 독이 없다고 본다. 따라서 몸이 냉하고 손발이 유난히 차며, 피부가 창백한 소음인에게 잘 맞는다. 또한 소음인은 소화기가 약해 식욕이 없고 소화가 잘 안되기 일쑤인데 성질이 뜨거운 고추를 먹으면 소화기를 따뜻하게 하고 입맛을 돋울 수 있다.
3. 고추의 성분과 효능
1) 캡사이신(capsaicin) - 진통효과, 스트레스 해소, 식욕 증진, 항암효과, 비만 예방
캡사이신(capsaicin)은 고추의 매운 맛을 내는 알칼로이드 화합물이다. 특히 고추의 태좌(고추씨가 붙어있는 부위)와 과피에 다량 함유되어 있다.
① 진통효과
캡사이신의 매운 맛은 혀와 피부에서 통각으로 인식이 되는데 이 통증자극이 뇌에 전달되면 천연 진통제인 엔돌핀이 방출된다. 그 이후에는 신경전달세포의 기능을 일시적으로 마비시키기도 한다. 즉, 캡사이신은 고유의 진통효과를 나타내는 것이다.
2003년 미국 위스콘신 대학의 한 연구팀이 신경통 환자를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고추추출물로 만든 패치를 통증 부위에 붙이자 통증이 33%나 줄어드는 결과를 얻은 바 있다.
② 엔돌핀 분비, 스트레스 해소
고추의 캡사이신은 기분좋게 체온을 올려 몸을 개운하게 하면서 뇌에서 엔돌핀 분비를 자극하여 기분을 좋아지게 한다. 뇌는 매운 맛을 통증 감각으로 느끼기 때문에 통증의 완화를 위해 엔돌핀이 분비되기 때문이다. 한의학적으로 보아도 매운맛(辛味)은 뭉쳐진 기운을 발산시키는 성질이 있어 스트레스로 답답하고 억울한 마음을 풀어준다.
③ 위장 보호, 식욕 증진
캡사이신은 자극성이 있어 속이 쓰리게 할 수 있지만 실제로 일상에서 먹는 고추의 양으로는 위의 점막을 손상시키지 않는다. 오히려 적정량을 먹어주면 위를 자극하여 소화액 분비를 촉진시키며 위장장애가 발생하지 않도록 도와주고 헬리코박터균의 증식을 억제한다.
싱가폴 대학의 한 연구에 의하면 쥐에게 캡사이신을 투여하였을 때 술, 담배, 스트레스에 의한 위점막 손상이 완화된다는 결과가 나타났다.
④ 항암 효과
고추의 캡사이신은 암 유발물질의 대사를 방해하여 암을 예방하고 암 세포를 사멸시키며 다른 부위로 전이되지 않도록 막는 역할을 한다. 캡사이신은 체내의 활성산소를 없애는 항산화작용을 하여 조직이 산화되어서 손상되는 것을 막아주며, 염증을 억제하고 종양의 진행을 억제한다.
최근의 연구결과에 의하면 고추는 위(胃)에서 생성되는 발암물질 중의 하나인 니트로소아민이 돌연변이로 바뀌지 않도록 억제해주며, 암세포에 캡사이신을 직접 넣었을 경우 세포자멸사(apoptosis)를 이끌어내는 것을 밝혀냈다.
특히 캡사이신 성분은 위와 장의 운동을 촉진시키고 위장 점막을 방어하여 위암, 대장암과 같은 소화기암을 예방하는데 더욱 좋다.
⑤ 비만 예방
고추의 캡사이신은 아드레날린의 분비를 도와 간과 근육에 있는 글리코겐의 분해를 촉진하고 에너지를 생산한다. 지방세포에는 지방을 축적하는 흰색 지방세포와 지방을 태워서 열을 발생하는 갈색 지방세포가 있는데, 캡사이신은 갈색 지방세포에 작용하여 체지방을 감소시킨다. 즉, 에너지의 소비를 높여 기초대사량이 늘어나고 체중이 감소되도록 하는 것이다.
군산대학교 식품영양학과의 한 실험에서는 고춧가루 10g을 물에 타서 섭취하고 아무런 신체의 움직임을 주지 않고 20분이 경과한 뒤의 신체를 관찰하였다. 그 결과 체온 상승과 더불어 에너지 소비량도 상승하여 운동한 것과 유사한 신체변화를 확인할 수 있었다. 또 다른 실험에 의하면 캡사이신을 투여한 쥐의 체지방 축적량이 투여하지 않은 쥐에 비해 30%나 적게 나타났다.
2) 풍부한 비타민 - 피로 회복, 감기 예방, 피부 건강 유지
① 피로 회복
고추에는 비타민A와 비타민C가 풍부하여 피로 회복에 탁월하다. 특히 고추의 비타민C는 감귤의 3배, 사과의 20배에 해당한다. 예로부터 우리 선조들은 여름을 대비하여 풋고추를 먹었는데 초복에는 1개, 중복에는 2개, 말복에는 3개를 공식화하여 먹었다. 이는 부족한 비타민을 보충해서 무더운 여름철 피로를 해소하기 위한 선조들의 지혜였다.
② 감기 예방
고추에 함유된 비타민A, C와 캡사이신은 질병에 대한 저항력을 높여준다. 특히 비타민 A는 호흡기를 건강하게 하고 면역력을 강화시켜서 감기를 예방하고 빠른 회복을 돕는다. 캡사이신이 비타민의 산화를 막아 주므로 조리과정에서 열을 가해도 비타민이 파괴되지 않는다.
미국 존스홉킨스 의과대학의 조지 필립스 박사 연구팀은 고추가 면역체계의 1차 방어선인 피부를 보호하고 침의 분비를 관장하는 콧물샘을 자극하여 감기를 예방해준다고 밝혔다. 콧물샘을 자극하면 콧물이 분비되면서 콧속의 노폐물의 배출 효과가 있기 때문에 감기 예방과 회복에 더욱 효과적이다.
③ 피부 건강 유지
고추에 함유된 베타카로틴은 비타민 A의 전구체로서 피부와 점막을 건강하게 유지하는데 도움을 준다.
4. 고추를 먹을 때 주의할 점
1) 좋은 고추 고르는 법
고추가 가장 맛있는 시기는 8~9월의 한 여름, 초가을 시기이다. 좋은 고추를 고를 때는 꼭지가 단단히 붙어 있는지 먼저 확인해야 하는데 고추는 꼭지부터 상하기 때문이다. 몸통은 표면에 윤기와 탄력이 있는 것이 좋고, 색깔이 선명하며 껍질이 두껍고 씨가 적은 것이 좋은 고추이다.
2) 고추를 먹으면 안 좋은 경우
일상에서 먹는 적당한 양의 고추는 소화액을 분비시키고 식욕을 촉진하는 효과가 있지만 과도하게 많이 먹으면 소화에 부담이 될 수 있다. 특히 위궤양, 십이지장궤양, 역류성 식도염, 과민성대장증후군 환자들이 공복인 상태에서 고추를 지나치게 많이 먹을 경우 위장점막을 손상시킬 수 있다.
또한 고추는 성질이 뜨거운 음식이므로 평소 열이 많은 체질인 사람이 많이 먹으면 열을 더욱 돋울 수 있다. 특히 임산부가 열기가 있는 경우 매운 음식을 많이 먹으면 태어난 아기가 태열이 있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5. 고추와 어울리는 음식 궁합
1) 풋고추와 멸치
풋고추와 멸치는 잘 어울리는 한 쌍이다. 풋고추의 베타카로틴은 지용성이므로 멸치의 지방으로 흡수율이 더 높아진다. 또한 멸치에는 비타민C 성분이 없는 반면 풋고추에 풍부하게 함유되어 있어 멸치의 부족한 영양성분을 보충해줄 수 있다.
2) 고추와 우유
얼핏 들으면 이상한 조합이지만 고추의 매운맛을 완화하기 위해서는 우유를 마시는 것이 좋다. 캡사이신 성분은 물에 녹지 않으므로 지방성분을 이용하여 녹여야 하는데, 특히 우유의 유지방이 캡사이신을 없애기에 더욱 효과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