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8-01-18 15:01
[ezGolf] 특발성 폐섬유증
 글쓴이 : 이광연한의원
조회 : 7,391  
드라마 속 여주인공을 죽어가게 한 그 질병 특발성 폐섬유증 에 대하여...
 
글쓴이 : 이광연 조회 : 759 작성일 : 2004-02-11 12:50:29
 
 

드라마 속 여주인공을 죽어가게 한 그 질병'특발성 폐섬유증'에 대하여...

 

 

 

 

최근 여자 주인공이 난치병에 걸려 서서히 죽음을 맞이하는 과정을 그린 드라마들이 시청자들의 마음을 울리고 있어서 화재가 되고 있다.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주말드라마 '완전한 사랑'의 여주인공은 듣도 보도 못한 '특발성 폐섬유증'이라는 희귀병에 걸려서 서서히 죽음을 맞이한다.

 

일반인들은 못 고치는 난치병이라 하면, 쉽게 '암'을 떠올린다. 그래서 '특발성 폐섬유증'이 얼마나 심각한 질환인지 알지 못했지만, 드라마 여주인공이 죽어 가는 것을 본 시청자들은 그 질환이 정말 무서운 질병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것이다.

 

'특발성 폐섬유증'이란 말 그대로, 폐가 특별한 이유 없이 섬유화되어 제구실을 하지 못하게 되고, 결국은 '호흡부전'으로 죽음을 맞이하는 병이다.

 

드라마의 남자 주인공이 이런 말을 한다.

"속이 썩어 문드러져서, 가슴이 벌집처럼 구멍이 숭숭 뚫리는 병이 걸린 겁니다."

폐섬유증을 가장 쉽고 정확하게 말하면 '폐가 벌집처럼 구멍이 숭숭 뚫리는 병'이다.

폐조직이 섬유화되면서 딱딱하게 굳어져 폐조직은 점점 수축이 되고, 기관지는 확장이 되어, 구멍 뚫린 벌집과 같은 모양이 된다. 그렇게 되면서 공기를 교환할 수 있는 폐의 조직이 줄어들어 호흡곤란이 오게 된다.

 

이 병의 원인은 확실히 밝혀져 있지 않았지만, 유전적 인자가 크게 작용하며, 석면에 관련된 일을 한 사람이 많이 걸린다. 그러나 전혀 인자를 밝힐 수 없는 경우가 많아 환자들을 더욱 당황스럽게 한다.

유아에서 고령까지 발생할 수 있지만, 드라마 여주인공과 같이 50대 전후로 많이 발생한다.

 

폐의 간질이 섬유화 되어 가는 과정은 아마도 자가 면역기전에 의한 것으로 추측된다. 즉 면역복합체와 미확인된 항원에 의해서 폐의 대식세포가 활성화되고, 이로 인해 백혈구와 여러 면역세포들을 폐포강내로 유인되어 폐에 염증이 유발된다. 또한 섬유모세포와 근육세포가 증식하도록 하는 각종 매개체를 분비해서 폐에서 섬유조직 생성이 활발해지고, 결국 폐가 점점 섬유화되는 것이다.

 

처음에는 진찰소견이나 청진, X-RAY 상에서도 정상으로 나와 질환을 놓치는 경우가 많다. 일부 환자들은 감기와 같은 호흡기 질환 후에 호흡곤란이 지속되어 이 질환을 발견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드라마의 여자 주인공도 아무 증상도 없었는데, 건강검진에서 우연히 발견하게 되고 증상이 서서히 나타난다.

가끔 마른기침을 하고, 무리하게 일을 하면 호흡곤란이 나타난다. 시간이 지나면서 식욕이 없어 잘 먹지도 못하며, 얼굴이 창백해지며, 몸이 점점 수척해져가며 몇 개월이 지나면 잦은 호흡곤란으로 코에다 산소호흡기를 달아야 호흡을 할 지경에 이른다.

하루하루가 다르게 증상이 심해지는 것을 겪는 환자도 고통스럽지만, 손도 쓰지 못하고 부인이 죽어 가는 것을 단지 지켜보기만 해야하는 남편의 고통은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눈물을 쏟아내기에 충분하다.

 

이처럼 질병 초기에는 무리하게 움직이거나 운동을 하면 호흡곤란이나 마른기침을 하는 정도이지만, 수개월에서 수년이 지나면 휴식시에도 호흡곤란이 오고 식욕부진, 체중 감소, 관절통, 피로감 등의 전신증상이 같이 동반된다. 후반기에는 폐고혈압, 폐성심이 보이고 결국에는 우심부전이 동반되며 사망에 이른다.

 

정말 치료법은 없는 것일까?

애석하지만 없다. 그래서 '속수무책' 죽음을 맞이하게 하여 드라마를 더욱 슬프게 한다.

일반적으로 부신피질호르몬(스테로이드) 약물인 '프레드니손'으로 폐의 염증 반응을 줄이고, '사이클로포스파마이드'로 항진된 면역 반응을 억제시키려는 시도를 한다.

그러나 죽음을 향해 치닫고 있는 폐의 섬유화를 막을 방법은 아무 것도 없다.

다만 환자에게 금연을 권하고, 호흡이 곤란하면 산소호흡기를 대어 주고, 폐고혈압, 폐성심, 우심부전 등의 합병시 이뇨제를 써 주거나, 기침과 호흡곤란이 심하면 기관지 확장제를 써 주는 임시방편 뿐이다.

 

현대에 들어서 의학기술의 발달로 전염병은 획기적으로 줄었지만, 환경 오염으로 인해 위와 같은 희귀성 질환의 종류와 환자수는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이런 질환 앞에서 의사로서 손도 쓰지 못하고 지켜봐야 한다는 현실에 자책감과 한계가 느껴진다.

 

현대 의학은 인간 게놈지도 완성으로 100% 질병정복에 도전을 하고 있는 상황에 이르렀다. 인간 게놈지도만 밝혀지면 모든 질환을 예방하고 치료할 수 있다는 부푼 꿈을 꾸고 있는 사람들은 가히 신의 영역에 도전을 하고 있는 샘이다.

이런 소식은 희귀 난치성 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와 보호자들에게 큰 희망을 주고 있지만, 이전의 의학 연구와 같이 부풀려진 광고에 그쳐 큰 실망만 안겨주지 않을지 조심스럽게 걱정이 된다.

 

아이러니 하게도 의학이 발달할수록 새로운 질환이 급증하는 것은 인간이 감히 신의 영역에 도전을 감행한 결과가 아닐까? 그러니 인간 게놈지도가 완성이 되어도 신께서는 그것으로 풀 수 없는 더 큰 벌을 내릴 수도 있는 일이다.

 

이런 질환 앞에서 기도밖에 할 수 없는 무력한 의사이지만,

의사가 아닌 하나의 사람으로서 바라 건데, 제발 선한 사람들이 더 이상 힘든 질병으로 고통받지 않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오랫동안 사랑하면서 살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래서 의사가 필요 없는 세상이 오기를...

 

-이 글은 필자가 동의난달 원고에 실었던 글입니다.-

 

 

□ 이광연한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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