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8-01-19 15:55
글마루 2011년 9월 - 기허증세
 글쓴이 : 이광연한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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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허(氣虛) 증세

 

아침과 오후의 기온차가 많이 나게 되는 가을철에는 유난히 나른하기도 하고 몸이 무겁기도 하며, 아무것도 하기 싫어지는 분들이 많다. 몸에 무슨 문제가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병원에서 혈액검사 등 진단을 받아봐도 특별한 이상이 없다고 한다. 그러다보니 몸이 허한가 해서 한의원에 가보면 기가 허하다, 즉 “기허(氣虛)”라는 말을 많이 듣게 된다.

 

기허(氣虛), 즉 기(氣)가 허(虛)하다는 뜻을 알기 위해 기(氣)가 무엇인지 알아보자. 기(氣)를 영어로 해석하면 spirits, energy, strength 등 으로 불린다. 한자든 영어든 기(氣)는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로 인식한 것이다.

 

한자의 기(氣)를 좀 더 살펴보자, 氣를 분리해보면 气와 米로 나눌 수 있다. 초기 한자의 氣는 米가 없는 气로 쓰였다. 이 모양은 하늘의 구름이 흐르는 것을 뜻한다. 즉,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높은 하늘의 구름도 움직이게 하는 어떠한 힘, 자연계에 꽉 차있어서 어디에도 닿지 않는 곳이 없는 것을 气라고 표현한 것이다. 거기에 인간이 먹는 쌀(米)을 더하여, 인체에 반드시 필요한 힘, 에너지를 氣라고 하였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气와 氣가 통합되어 氣만 쓰이게 되었다.

 

다른 설에 따르면, 氣는 부뚜막 가마솥 안에 쌀을 넣고 밥을 하는데, 거기서 나오는 수증기로 솥뚜껑이 들썩들썩 하는 모습을 본따, 눈에 보이지 않는 힘을 설명한 氣가 만들어졌다고 설명한다.

 

동양철학에서는 유물론적인 서양철학의 발달과 다르게 눈에 보이지 않지만, 자연계를 움직이고 구성하는 법칙으로서의 기(氣)에 대한 논의가 왕성했다. 송대의 주자(朱子)에서부터 시작된 이(理)와 기(氣)에 대한 고찰은 조선시대 퇴계 이황과 율곡 이이의 이기이원론(理氣二元論)-일원론(一元論)의 논쟁으로 이어졌다. 이를 통해 우주의 물질과 그 내면의 법칙에 대한 인식의 발전이 이루어졌으며, 최근 현대과학철학의 면에서 보아도 놀라운 측면이 많다.

 

『동의보감』에서는 인체의 구성을 정(精), 기(氣), 신(神), 혈(血)로 나누고, 그 중에서도 기가 정과 신의 근본이라고 하여, 기(氣)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한의학에서 기(氣)는 정기(正氣), 혹은 진기(眞氣)와 사기(邪氣)로 나누어지게 되는데, 기허(氣虛)는 올바르고 참된 기(正氣, 眞氣)가 부족하고 약해진 것을 말한다.

 

올바르고 참된 기가 약해지면, 인체 외부의 어긋난 사기(邪氣)가 몸을 침범하게 된다. 이에 대해 『동의보감』에서는 “사람이 우주의 기운 속에 사는 것은 물 속에 물고기가 사는 것과 마찬가지다. 물이 흐리면 물고기가 여위고, 기가 흐리면 사람이 여윈다.”고 하였다. 따라서, 기허(氣虛), 사람의 기가 약해지면 외부의 탁한 기운에 더욱 침범당하기 쉬워지게 되고, 면역력이 약해지며 질병에 취약해지는 것이다.

 

한의학에서는 기와 관련된 장부는 주로 심(心), 폐(肺), 비(脾)장 이라고 설명한다.

 

심기허(心氣虛)인 경우, 가슴이 두근거리고 답답하고, 숨이 차고, 괜히 불안하고 초조하고, 맥이 건너뛰고, 때로는 심장이 피를 내뿜는 능력이 떨어지는 증상이 나타난다.

폐기허(肺氣虛)인 경우, 조금만 움직여도 땀이 흐르고, 쉽게 숨이 차고, 감기에 잘 걸리고. 또 기관지가 약하고, 가래가 많고, 얼굴이 창백한 증상이 나타난다.

비기허(脾氣虛)인 경우는, 전신이 무기력해지면서, 소화기능이 떨어지고, 식욕이 없고, 헛배가 부르고, 팔다리에 힘이 없게 된다.

 

기허로 나타나는 증상으로는, 육체적인 증상과 정신적인 증상이, 머리에서 발끝까지 모두 다 나타난다. 쉽게 피로하고, 아침에 일어나기도 힘들고, 온 몸이 무기력해지고, 나른해지며, 항상 졸리고 의욕이 저하된다. 내장으로 가는 혈류량이 적어짐으로 인해서, 식욕이 저하되고, 소화도 안되고, 설사가 나기도 하고 속이 불쾌하고 더부룩하다. 말도 하기가 싫고, 말소리에 힘도 없으며, 가슴이 뛰고, 안정이 안되면서 얼굴이 달아오르는 증상이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

 

이런 증상은 평소에 신경이 예민한 사람, 소화기가 약하거나, 쉽게 피로를 느끼는 사람, 저혈압, 빈혈을 가진 사람들과 만성적인 질환이나, 선천적인 질환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서 많이 나타난다.

 

피곤한 증상이 지속적인 경우는 기허증이 아닌 질병에 의한 것일 수 있다. 대표적인 질병은 간질환, 신장질환, 폐결핵, 갑상선 질환 등의 만성 소모성 질환이 있어, 원인 질환이 있는 경우에는 그에 대한 치료를 먼저 해야한다.

 

간질환 경우에는 전신 피로를 쉽게 느끼고 황달이 올 수 있고, 식욕이 저하되면서, 오후가 될수록 피로가 심하다. 신장 질환은 피로와 함께 가려움증이나 부종이 생길 수 있다. 폐결핵은 피로와 함께 호흡기 증세인 기침, 가래, 객혈 등이 동반된다. 갑상선 질환은 체중의 변화가 생기고 생리불순이나 빈맥 등이 나타날 수 있다.

 

기허증세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양질의 음식섭취가 중요하다. 한의학에서는 생명활동의 근간인 기의 생성과정을 기생어곡(氣生於穀)이라 하여, 매일 섭취하는 음식물로부터 기(氣)가 생긴다고 하였다.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음식 중에서는 우선 식초를 권하고 싶다. 15세기에 서유럽 탐험가들이 신항로를 개척하기 위서 오랫동안 바다를 항해하면서도, 건강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식초에 절인 채소를 즐겨 먹은 까닭이다. 식초의 유기산은 몸의 피로를 유발하는 젖산을 분해시켜주기 때문에, 피로를 풀어주는데 큰 도움이 되고, 위와 장의 운동을 촉진시켜주기 때문에 식욕을 증진시킨다. 인간이 만든 최초의 조미료로, 다른 음식이 가진 비타민이나 무기질 등의 영양소가 파괴되지 않도록 도우며, 소화흡수를 도와 기력을 회복시키는 아주 좋은 식품이다.

 

또, 기허(氣虛)에는 참깨가 좋다.『동의보감』에서는 ‘참깨를 과로가 심한 경우에 먹으면, 오장을 보하고 기력을 도우며, 피부를 부드럽게 하고 뇌를 충실히 한다.’고 했고, 중국에서는 ‘불로장생(不老長生)의 묘약’으로 칭했다. 참깨에는 질 좋은 단백질과 피로회복을 돕는 토코페롤이라고 불리는 비타민 E가 풍부하며, 비타민B1, B2, 미네랄 등으로 우리 몸을 건강하게 만든다. 또, 참깨의 ‘리그난’이라는 지방산은 강력한 항산화물질로 뇌를 활성시킨다.

 

땀을 많이 흘려 기가 약해지는 여름철에 많이 먹는 황기 삼계탕도 기허(氣虛)를 치료하는 음식이다. 황기는 성질이 따뜻하고 맛은 달며, 몸이 허약해서 기운이 약해진 데 많이 사용하는 약재로서, 약해진 기를 보충하고, 피부에 작용해서, 땀이 저절로 나는 자한(自汗), 밤에 식은땀이 나는 도한(盜汗)을 모두 치료하는 약재다. 황기삼계탕에서 닭의 효능에 대해서도 알아보자. 예로부터 사위가 오면 씨암탉을 잡아주곤 했다. 이유인즉슨 닭고기는 다른 육류보다도 육질이 가늘고 연하고 소화흡수가 빨라서, 먹고서 바로 힘을 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닭고기를 육류의 산삼이라고 했다. 또한 닭고기에는 질 좋은 단백질과 지방질이 많아서 충분한 영양공급원이 되기 때문에, 더욱더 각광받는 것이다. 특히 닭 날개에 많은 뮤신은 단백질의 흡수력을 높여주게 되어 허해진 몸에 체력을 보충해주는데 최고이고, 성장기에 있는 어린이들의 성장을 촉진하고 체력을 보해주고, 청장년의 경우에도 체력과 함께 운동기능 및 성기능을 증진시키니까, 옛말에 ‘닭 날개를 먹으면 바람 난다’는 속설마저 생길 정도이다.

 

기허로 나타나는 증세의 완화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경혈지압 요법은, 방광경상에 있는 배수혈(背兪穴)이 있다. 등뼈 좌우로 3cm 정도 되는 부위를 목덜미부터 엉덩이 있는 아래 쪽으로 계속 눌러 내려가는 방법인데, 첫 번째 뼈(경추7번과 흉추1번 사이)로부터 엉치 부위까지 연결되어 있다. 인체의 등쪽에 분포되어 있는 오장육부(五臟六腑)의 반응점인 배수혈(背兪穴)에 자극을 줌으로써, 이상이 있는 내장(內臟)의 기능을 조율하여, 기허증세로 불편한 몸을 회복시키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

 

기가 허할 때 기를 채워줄 수 있는 한방처방은 사군자탕(四君子湯)이 대표적이다. 군자와 같이 훌륭한 네가지 약재로 이루어졌다는 뜻인 사군자탕은 인삼, 백출, 복령, 감초 4가지로 이루어진 단촐한 처방이지만 기허(氣虛)를 치료하는데 기막힌 효과를 보인다. 사군자탕은 기를 보하고 피로를 회복시키며, 심장을 강하게 하고 정신을 안정시키는 인삼, 비위를 튼튼히 하고 불필요한 수분을 제거하는 백출과 복령, 약재들을 조화롭게 하고 혈맥을 잘 돌게 하는 감초로 이루어져 있다.

 

이러한 사군자탕(四君子湯)은 이공산(異功散), 향사육군자탕(香砂六君子湯), 보중익기탕(補中益氣湯), 팔물탕(八物湯), 십전대보탕(十全大補湯) 등 한의학 명(名)처방들의 근본처방이 되는 기허(氣虛)치료의 대표처방이다.